인터뷰최선영


[출처] 2020 서울을 바꾸는 예술 인터뷰 :
지질학적 베이커리


인터뷰/정리:최선영
인터뷰이:지질학적 베이커리팀 (안데스/뭉)

프롤로그


어린 시절, 30분만 가면 정상에 도착한다는 부모님의 거짓말을 믿으며 산을 오르던 기억이 있다. 나는 매번 속으면서도 곧 정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 기대 속에는 산꼭대기에 내 발로 올라 익숙했던 세상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에 대한 의미가 가득했다. 산은 그런 곳이었다. 부지런히 걸어 올라간 나에게 응원과 대견함을 전하는 곳. 나도 이만큼 높은 곳에 올라설 수 있다는 확인의 장소. 산은 과연 그런 곳이기만 할지 지질학적 베이커리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산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닐텐데 도시 속 산은 바쁜 사람들을 다독이는 기능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빵산별 원정대와 북한산에 간 날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았다. 일부 구간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였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산에 왔을까. 비슷한 복장을 하고 비슷한 속도로 산을 타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빵산별 원정대는 조금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 시선을 더욱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 의도와 진행 과정에서 느낀 지점들을 들어보았다.



Q. 지질학적 베이커리의 빵산별 원정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데스 : 지질학적 베이커리는 베이킹으로 산 혹은 지구가 형성된 원리를 추적하는 팀이에요. 하나의 주제로 전시, 강연, 워크숍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모였고 이제 시작하는 팀입니다. 작년에 팩토리2에서 전시형태로 진행을 했었다면 「서울을 바꾸는 예술」에서는 지질학에 대해 조금 다른 형태로 접근해보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직접 산에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고요, 산에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과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Q. 「서울을 바꾸는 예술 사업」에 대한 인상이나 의견이 있으신가요?

뭉 : 사실 저는 「서울을 바꾸는 예술」 사업을 이번에 처음 접했어요. 이번 기회에 지질학적 베이커리도 아티스트 개인활동이나 개인 연구 차원으로 하던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확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팀이 만들어졌어요. 「서울을 바꾸는 예술」을 준비하다 보니 사회적 예술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안데스랑 초반에 얘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고요. 예술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역할 같은 거요. 기획을 준비하면서 추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아무래도 지역성에 관한 거였어요. 연결성과 관계성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데 서울이라는 지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 한계처럼 느껴졌거든요. 중심 지역은 유지하되 필요에 따라 과정에서는 지역적 한계를 조금 열어주면 좋겠다 생각해 보았어요.

안데스 : 이 사업을 소개하는 설명회 영상을 봤었어요. 그 비디오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김월식 선생님이 "지구를 구하려고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 거였어요. 그걸 보고 사업을 신청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지구를 구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Q. 빵산별 원정대가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연결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더 듣고 싶네요.

안데스 : 두 가지가 서로 맞지 않는다기보다는 제가 공공적으로 작업을 해보려는 의도가 그동안 전혀 없었어요. 창작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 빵산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동안 여타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인상이 이런 우리 활동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죠. 정확하게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향유해야 할 것 같고, 비주류는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뭉 : 저 같은 경우에는 공공성과 연관이 있는 일들을 꽤 오랫동안 해왔어요. 청소년 센터에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랑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공공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 편이에요. 그래서 안데스 작가와 예술 영역에서의 작업을 할 때는 오히려 공공성에 대한 감각을 덜어내려고 했어요. 대중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서비스 같은 게 예술이나 공공성은 아니잖아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관점을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활동을 통해 지질학이라는 자연과학이 전문가들만의 학문이 아니라 시민들의 학문, 공공 즉 모두의 것이 되는 것에 조금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빵산별의 공공성이지 않을까요.

Q.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가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같이 하는 것에서 의미 있어 보이는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안데스 : 저 혼자 지질학적인 지식을 갖게 되는 건 의미가 없더라고요. 나도 잘 모르니까 같이 배워 나가보자는 취지였어요. 그리고 실제로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을 걸 알게 됐어요. 여러 사람이 산에 가도 각자 보는 게 다르잖아요. 보는 게 다르고 질문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걸 다 공유했거든요. 제가 알게 되는 것들이 훨씬 풍부해지는 걸 느꼈어요.

Q. 그 전에 팩토리2에서 전시와 함께 했던 ‘지질학적 베이커리’ 작업은 다른 방식이었나요?

안데스 : 팩토리에서는 제가 혼자 공부한 지질학적 내용을 바탕으로 빵을 만들고 손님들이 오면 빵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고 판매하는 형식이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전문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지질학자 천문학자를 모셔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한 연계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렇게 진행을 하면 전문가들이 알아서 막 정보를 쏟아내요. 참여자들이 뭘 알기를 원하는지 상관없이요. 마지막 즈음에 참가자들이 질문을 하고요. 이런 형식 말고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전문가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느낌으로요. 그래서 이번에는 참가자들이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그걸 쌓아 올린 다음에 전문가가 그것에 답하는 형식으로 해봤어요. 참가자들 본인의 질문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하게 되면 자기 것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참가자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가득 품고 질문을 먼저하고, 전문가로부터 그에 대한 답으로 설명을 해주면 내용이 훨씬 참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빵산별 원정대 진행 현장(10월 24일 북한산), 사진 최선영

Q. 저는 직접 참가자 입장에서 북한산도 가고 질문도 생각해보니 질문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떤 관심으로 어디까지 질문할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진행하신 입장에서는 참가자들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질문이나 궁금함이 촉발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안데스 : 참가자들이 산행을 통해서 각 산의 지질학적 특성을 잘 발견하신 것 같아요. 산행 후 워크숍에서 질문거리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나왔거든요. 한 분 한 분으로 따지면 질문의 깊이나 양이 모자를 수도 있겠지만요. 모두의 질문이 공유되는 거니까, 나의 질문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다른 참가자의 질문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하는 부담감이 조금 있으셨던 것 같은데, 오히려 저는 전혀 지질학과 상관없는 질문도 좋고, 정말 아무 질문을 해도 된다고 참가자들께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조금 부담감은 있었던 모양이에요. 아쉬웠던 부분은 오히려 대부분의 질문이 너무 지질학적인 관점으로 나왔던 점이에요. 이전 전시 때 지질학자와의 토크에서는 엉뚱한 질문이 많이 나오기도 했어요. 인구가 늘어나는 게 지질학과 어떤 관계냐는 등. 이번에는 지질학적인 탐구에 포커스를 둬서 그런지 엉뚱한 질문은 많이 나오지는 않았어요.

뭉 : 사람들이랑 산행을 같이 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재밌는 질문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됐어요. 단순히 산을 탐사하는 게 아니라 한 차원 더 넘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을요. 이번 경험을 토대로 좀 더 세밀한 장치를 만들어 나갈 생각이에요.

안데스 : 근데 대화에 참여하는 지질학자마다의 특성이나 스타일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전문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익숙한지, 혹은 지질학을 좀더 수사적 표현으로 드라마틱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지 등이요. 아무래도 지질학이 이공계 분야이다 보니까 참가자가 인문학적인 질문을 하는데도 지질학자분들이 너무 이성적으로 대답을 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

인터뷰어가 북한산에 대해 지질학적 질문을 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사진 최선영

Q. 저는 지질학이라는 게 너무 전문적으로 느껴지니까 워크숍에서 ‘내 질문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산에서 본 게 돌인지 바위인지 흙인지 혹은 산 자체인지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생각해본 적이 잘 없으니까 그런 것도 어려웠거든요.

안데스 : 저도 예전에 암석과 광물의 차이를 몰랐어요. 그 정도 수준이었어요. 제가 다른 지원금으로 지질학자와 협업하는 사업이 있는데, 올해는 연구년이라 그 지질학자와 한 달에 두 번씩 만나서 지질학을 배우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첫날에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주 낮은 수준의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분이 대답해 주시면 또 그 질문 속에서 모르는 걸 찾아서 질문하고 그런 식으로 두 시간 정도 문답을 반복했더니 개괄적으로 지질학에 관해서 알게 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보통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차례를 정하고 순서대로 정보가 전달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정보를 받는 사람이 원하는 순서와 진도에 맞게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배우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방향을 이끌 수 있고, 모르겠으면 몇 번이고 질문을 하면서 진도를 자기에 맞게 맞출 수 있는 것이죠. 그때 지질학자와의 대화를 해보고 빵산별도 이런 식으로 참가자가 주도적으로 진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그런 측면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전문가, 학자들과의 사전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했어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잘 모르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워크숍에서 중요한 대화의 순간들로 이어져 보였거든요.

안데스 : 일단 기획단계에서 학자분들에게 사업의 전반적인 취지를 말씀드렸어요. 가장 중요한 건 그거였어요. “질문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질학자는 참가자가 질문한 것에만 대답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전문가 입장에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있겠지만, 우선은 참가자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도 전문가가 말을 아끼면, 참가자는 더욱 질문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질문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도 사전에 이런 프로그램의 취지를 전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했어요. 그래도 내용적으로는 아직 전문적인 단어 등 어려운 게 많긴 하죠.

뭉 : 전문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안데스 작가가 지질학자를 섭외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을 했어요.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분들께도 연락을 드려보고, 특히 여성 학자와 만나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만남이 이뤄지지는 않았죠.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좀 아쉬웠어요. 더 노력해야겠죠.

안데스 : 저는 여성 지질학자와 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여성분과는 만나본 적이 없어요. 학교 연구실로 연락을 시도했는데, 바쁘셔서 결국 캐스팅이 안 된 여성분의 경우도 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위계가 생겨버려서 질문하기가 어렵잖아요. 비슷한 나이면 친구처럼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 식의 캐주얼한 분위기를 원했는데 조금 아쉽긴 해요. 서울에 지질학과가 3학교 밖에 없대요. 그만큼 지질학이 비인기 학과라는 거죠. 그 와중에 저희가 원하는 건 화성암석학 쪽이었고요. 근데 서울의 학교마다 화성암석학 연구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서 지질학자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어요. 결국 대전 지질자원연구원 센터장님이 협업을 해주셨어요. 이런 사업을 할 때 지질학자를 섭외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지질학도 연구가 세부적으로 분화되다보니 자기 분야가 아닐 경우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보였고요. 또 대중을 상대로 강연하는 지질학자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다른 과학 분야에는 심심찮게 해당 분야의 스타강사들이 있는데 말이에요.

Q. 저는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최하점 맞고 그랬거든요.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되었어요. 그런데 빵산별 원정대에서는 안데스 작가님이 빵과 지질학을 연결해서 접근했던 걸 따라가 보기도 하고 직접 산을 올라가 보니 그런 과정 자체가 교육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두 분은 진행하시면서 어떤 점을 느끼고 계신가요?

뭉 :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안데스 작가의 지질학적 베이커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통 예술가들이 과학에 접근한다고 하면 굉장히 관념적인데, 지질학적 베이커리는 실제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차용해서 좋다고요. 그 말에 공감이 되었어요. 작년에는 저도 참가자의 입장에서 지질학적 베이커리를 참여했었거든요. 워낙 인문학적이고 직관적인 것에만 익숙했던 제가 그때 마침 과학적 사고와 접근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어요. 안데스 작가의 작업이 마치 저에게 함께 공부해보자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어요. 나도 잘 모르지만 같이 생각하고 알아보자고 관객들에게 손을 내미는 느낌이랄까요.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을 걸고 제안하는 방식이 참 좋았고, 이번에도 그런 방식이되 조금 더 적극적인 경험을 만들어주고자 했죠.

안데스 : 저는 창작할 때 몸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에요. 근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산을 많이 가야 하니까 일이 끝나고 나면 너무 피곤했어요. 매번 몸을 혹사하게 되더라고요.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서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민해보기도 했어요. 사전 리서치를 위해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처음 가봤어요. 서울에 살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안 가봤었거든요. 안산은 저희 동네에 있는 산이라서 몇 번 가봤는데, 평소 안움직이는 저로서는 사전 리서치 때 안산을 등반하는 것 조차도 진짜 힘들었어요. 그래서 참가자들이 등산을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고요. 근데 몇 번 안산을 오르고 나니까 체력이 금방 충전이 되더라고요. 십대 때 부모님한테 억지로 끌려서 등산한 기억이 있어서, 등산이라고 하면 되게 힘들고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어떤 궁금증이 생기고 나니까 좋아하지 않던 것도 하게 되더라고요. 참가자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신기했던 건 산에 처음 가보거나 가는 걸 싫어했던 사람들도 올라가고 나니까 질문할 거리가 엄청 많았다는 거죠. 질문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던 건지 모르겠지만요.

뭉 : 저는 산을 좋아하는 편인데, 지질학적 산행은 처음이었거든요. 사전에 산들을 답사할 때 지질학적 산행을 계속 해봤는데 작은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걸 기준으로 전후가 달라졌어요. 그게 뭐냐면. 예전에는 산이라고 하면 그저 나무라거나, 벌레들이라거나 뭐 그런 생태적 자연을 막연히 떠올렸는데 어느샌가 ‘산=나무’가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작은 깨달음인데 그 이후부터 산에 가서 보는 것들이 달라졌어요. 관점이 달라진 거죠. 저뿐만이 아니라 참가자들도 저마다의 깨달음이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질학적 베이커리를 통해서 얻었던 아주 작은 깨달음이 앞으로의 삶에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Q. 이번에 저도 함께 갔던 북한산에서 안데스 작가님이 풍경을 보지 말라고 말씀해주신 게 정말 좋았어요. 자연을 사진의 배경만으로 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동일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려는 예술가적 태도가 느껴졌어요. 산을 지질학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생각을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안데스 : 줌 워크숍에서 지질학자가 대답을 해주실 때 들어보면, 지질학의 기본 단위가 100만 년이라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아득해지는 거죠. 그런 얘기를 듣고서 산을 보면 타임랩스처럼 산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상상이 들어요. 지질학이라는 게 그런 타임스케일로 이 땅을 바라보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 인간이라는 건 그 타임라인의 끝에 나타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거잖아요. 산이 먼저 있고 나서, 그곳에 잠깐 머물다 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보면 인간이 이 공간 자체를 잠깐 빌려 쓴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까 도시와 나의 관계가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참가자분들이 궁극적으로 깨달았으면 하는 부분도 이 부분이었는데, 이런류의 얘기를 줌워크숍에서난 후기로 언급하시는 분은 없더라구요. “이런 걸 깨달아야 해!” 하고 강요하듯이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저도 언급은 안 했고요.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한참 지질학을 접한 뒤에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참가자들은 이제 맛보는 수준일 테니까 아직 혼란스러운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지질학자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은 없어요.
어떤 지질학자에게 들은 얘기 중에 흥미로웠던 것은 화석학을 전공한 지질학자였는데, 화석학은 생물학과 지질학의 중간쯤에 있는데 세부전공을 선택할 때, 생물은 자신과 너무 가까워서 싫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부분이 흥미롭더라고요. 보통 인간을 위해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서 탐사를 하는 등 인간 중심적인 연구가 만연해 있는 것 같은데, 나 즉, 인간과 멀어서 좋았다는 대답이 신선했어요.

뭉 : 그래도 조금 지켜봐야 되는 게 있어요. 산행이든 워크숍이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짧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변화의 지점이나 깨달음을 소화해서 말로 표현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요. 당시의 즉각적 후기보다 SNS 후기나 설문지에 쓰여 있는 말들은 훨씬 다양했거든요. 아마 저희가 빵산별 원정대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것이라면 참가자들은 그것을 천천히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면서 비로소 자기관점화 시키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이 어느 순간 어떤 방식으로 일상에서 발현된다면 정말 서울이 바뀌어 가는 거겠죠.

안데스 : 저도 그런 게 재밌었어요. 이런 얘기가 참가자들에게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거든요. 다음 스텝으로 뭔가 있어야 하나. 일회성으로 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했고요. 이런 프로그램을 많이 안 해봐서 모르겠더라고요. 회차를 늘려서 시간을 많이 부여해야 좋을지. 방법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돌을 보면 무슨 맛일까 궁금해졌다”

“지리학자님과 면담을 하고 나니까 인왕산 정산 쪽 돔 형태의 바위들을 둥글고 견고한 깜빠뉴로 만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색되어 나타난 물결 무늬는 빵 반죽에 칼집을 내어 표현하고 싶어요!”

“평소에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디디고 선 땅들을 들여다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자연현상을 마주칠 때 늘 그 자연물이 가진 독특하고 고유한 조형에 매료된 채 감상하곤 합니다. 이번 빵산별 원정대를 통해서는 그 조형들이 가진 지질학적 인과 대하여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을 빵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더욱 위트 있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안데스님의 지질학적 베이커리작업을 피드로 지켜보며, '질문과 감각'이 어떻게 확장되고 변이하고, 흐르며 재구성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형태적 유사성이 재미있었는데요, 문답을 통해서 시간과 형성과정의 유사함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빵도 땅도 그 형성과정에 대한 질문해 본 적 없이 단지 현재의 대상으로만 감각하였는데요, 이번 참여를 통해서 두개의 대상이 가진 시간의 속성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성 과정 또한 매우 닮아있는 듯한 발효빵 종류들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지질학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에서 화학적 반응이나 각종 압력으로 형성된 것들 위로 우리가 생활하고 있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주변에 있던 것들에 무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갖고 있던 궁금증을 증폭 시키면 그게 가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자주 가설을 세우면서 하나씩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저만의 방식으로 해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질학에서 형성되는 모든 환경이 베이커리에서 빵이 놓이는 환경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온갖 가루들을 쏟아서 밀가루와 섞어 빵을 만들면 새로운 암석처럼 새로운 빵도 나올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문조사에서 나온 참가자들의 의견

Q. 그래도 참가자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며 참여하도록 안내하거나 서비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그것이 예술가적 태도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뭉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작가의 세계관 속에 대중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잘 따라올 수 있는 환경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했어요.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과도하게 안내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고 들어올 수 있도록 리드할 뿐이죠. 물론 이것이 행동적으로 리드한다는 것은 아니고, 작가의 시선을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분위기나 아우라를 만드는 것을 말해요. 그 속에서 전부 다른 자발적인 동기와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이고 또 다른 세계관들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런 것이 ‘사회적 예술’ 이라고 했을 때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역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Q. 나중에 더 해보고 싶으신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안데스 : 이런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싶어요. 근데 서울 산은 대부분이 화강암 산이어서 가본 산들이 비슷해요. 지질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같은 얘기를 자꾸 들으니까 제가 약간 지겹더라고요. 일단 내가 즐거워야 하는데 말이에요. 계속 한다면 다른 산을 가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산이 아니라면 다른 지질학적 특성을 발견해야 하나 싶고. 줌 워크숍 마지막에 지질학자와 대화를 한 이후에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레시피를 작성하게 되거든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북한산의 빵은 어떨까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참가자들의 레시피가 생각보다 되게 재밌더라고요.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레시피 중에서 대표적으로 몇 개만 만들어볼까 했는데, 다 만들어봐도 좋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내년에 참가자들의 레시피를 토대로 빵을 만들고 맛도 보는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지질학적 베이커리가 이렇게 빵산별 원정대로는 체험형 프로젝트도 하고, 개인 작업으로는 전시도 하면서 두 가지 갈래가 형제 작업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나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뭉 :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서울 산들을 가봤으니, 다음에는 산이 아니라 바다라든가 강이라든가 다양한 곳으로 가보고 싶어요. 본의 아니게 돌 수집가가 되었으니 돌을 소재로 작업을 해서 전시를 꾸려봐도 재밌을 것 같고요.

참가자들이 작성한 레시피(사진제공 지질학적 베이커리)


Q.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진행해 보니 빵산별 원정대가 「서울을 바꾸는 예술」이라는 사업적 맥락에서 어울렸던 것 같나요?

안데스 : 네, 산에 갔다 오고 나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하면 더할 나위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뭉 : 서울 산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기도 해요. 서울에 산이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다들 궁금해하지 않았잖아요. 단순히 오르는 대상으로서의 산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리고, 시민들한테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프로젝트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예술가들의 독특한 시선을 보여주면서 시민과 작가가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서울을 바꾸는 예술」이 가지는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안데스 : 여타의 사회적 예술? 혹은 공공예술의 모범답안 같은 것 말고, 좀 형식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달까? 작은 단위에서 그런 사회적 예술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이 「서울을 바꾸는 예술」이라면 그런 맥락에서 빵산별 원정대가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북한산, 사진 최선영

에필로그


지질학에 대해 몰두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지만, 지질학은 자연스럽고도 우연한 사건과 현상들의 흐름, 그 흔적에 대한 탐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지질학은 문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은 광물에게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이 시간이 흐른 후 누군가의 관심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그런 측면에서 지질학적 베이커리는 익숙하고도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산을 빵처럼 보는 건 어떨까’ 라고 다소 엉뚱한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산을 잘 들여다보자, 생성원리를 이해해보자, 열심히 올라가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자 라고 하지 않고. 그래서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뭐라고? 빵?’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만약 빵이라면...’이라는 은근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 상상의 시작점을 기존의 관점 바깥에 놓아보는 것이 예술의 매력이 아닐까. 빵과 산을 번갈아 살펴보다가 이 낯선 조합이 만들어내는 집요한 시선은 역시 예술 주변에서나 문득문득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최선영︎